1. 서론: “토리노에서의 침묵” —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
토리노의 말은 니체의 삶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시작된 허구입니다. 1889년 1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어느 거리에서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오열한 후 정신이 무너져 내립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의 철학의 종착점이자, 인간 이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벨라 타르 감독은 이 역사적 장면에서 상상력을 펼쳐, 그 말과 마부가 겪었을 수도 있는 6일간의 이야기로 토리노의 말을 구성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말 그대로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말 없는 세계, 움직임 없는 세계, 심지어 의미 없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타르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의 문법을 거의 모두 해체하며, '존재'라는 무게에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는 단지 한 마리 말과 아버지와 딸의 반복적인 일상을 담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가 천천히, 그러나 명확히 사라지는 과정을 그린 하나의 철학적 유언장과도 같습니다.
2. 무(無)의 반복: 일상이라는 존재의 지평
영화는 아버지와 딸이 사는 황량한 시골집을 배경으로, 매일 반복되는 루틴을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새벽이 되면 딸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고, 감자를 삶고, 아버지는 외투를 입고 마차를 손질하고, 하루를 그렇게 보냅니다. 영화는 이 일상을 6일간 반복하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통해 일상의 균열을 보여줍니다. 첫날은 말이 움직이지만, 둘째 날부터는 말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셋째 날에는 바람이 거세지고, 넷째 날엔 우물이 말라버립니다. 다섯째 날에는 나가려 해도 나갈 수 없는 절망의 기운이 감돕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 모든 것이 멈춥니다. 빛마저 꺼진 어둠 속에서, 이들은 감자를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습니다.
벨라 타르는 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성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또 아무것도 아닌지 천천히 들려줍니다. 이 반복은 '의미 없음'의 반복이 아니라, 세계가 사라지고 있는 실존적 징후의 누적입니다. 관객은 이 단조로운 리듬 속에서 마치 감각이 둔화되고, 시간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은 관객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 위함입니다. "삶이 지속될 가치가 있는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정말로 의미가 있는가?"
3. 자연의 침묵과 인간의 고립
영화는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통해 고립된 인간 존재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창밖에서 끊임없이 몰아치는 바람은 이 공간이 자연의 품에 있는 동시에, 자연으로부터도 외면당한 곳임을 상기시킵니다. 영화의 배경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바람소리만이 주인공처럼 영화 전체를 지배합니다.
이 바람은 단지 날씨나 기후가 아니라, '세계의 종말'을 암시하는 전조와도 같습니다. 마치 고대 신화 속 종말의 나팔 소리처럼, 이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인물들의 일상을 침식해 나갑니다. 특히 물이 마르고, 음식이 줄고, 외부인은 불길한 말을 남기고 사라지며, 말조차 움직이지 않게 되는 이 과정은 인간과 자연이 더 이상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시대의 비극을 상징합니다.
4. 언어와 침묵: 말하지 않는 자들의 저항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간혹 나누는 짧은 대화조차도 기능적이고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 침묵은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인간 언어의 무력함을 상징합니다. 세계가 붕괴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언어는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절정 장면 중 하나는 딸이 책을 읽는 장면입니다. 그 책은 일종의 종교적 선언처럼 보이며, 기존 세계의 가치들이 모두 부정되는 세계를 그립니다. 그 책 속 언어는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만, 오히려 그 한계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타르는 인간이 언어에 기대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강조합니다. 종말의 시대에는 말조차 기능을 상실합니다. 침묵은 곧 진실의 상태가 됩니다.
5. 미장센과 흑백의 감정
토리노의 말은 철저한 흑백 영상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이 흑백은 현실과 시간의 감각을 흐리게 만들며, 영화가 특정 시대나 장소에 묶이지 않도록 합니다. 타르 감독의 미장센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관찰하며, 롱테이크로 그들의 일상을 고요하게 기록합니다.
공간은 단 두 개—집 안과 바깥—뿐이며, 집 내부는 음침하고 어둡고, 외부는 거센 바람이 지배하는 죽음의 공간입니다. 타르는 이 두 공간을 통해 내부적 침묵과 외부적 파괴를 동시에 병치시키며,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종말의 구조를 시각화합니다. 관객은 이 절제된 시각 언어 속에서 '지켜보는 자'로서의 고통을 겪습니다.
6. 결론: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영화의 마지막 날, 세상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습니다. 촛불조차 켜지지 않고, 사람들은 말을 멈추고, 먹는 행위조차 의미를 잃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 '존재'라는 개념 자체의 소멸을 상징합니다. 토리노의 말은 세계가 사라지는 과정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기록한 연대기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이기도 합니다.
벨라 타르의 마지막 영화로 알려진 이 작품은 감독의 철학적 결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는 천천히, 아무런 극적인 사건 없이 사라질 수 있으며, 인간은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철저히 보여줍니다. 관객은 이 무력감 속에서 오히려 깊은 사유를 하게 되며, 이 영화는 영원히 기억될 질문을 남깁니다.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오늘도 리뷰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고편 : https://youtu.be/RfrCDq36eVQ?si=DCtmk_AXCQ8Tsu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