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히어런트 바이스 (Inherent Vice, 2014) - 리뷰
1. 도입: 마리화나 안개 속에서 깨어나는 누아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토마스 핀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1970년대 미국이라는 혼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누아르다. 이 영화는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 전통적인 형식마저 비틀어버리는 히피 누아르, 몽환 누아르, 혹은 반(反) 누아르의 영역에 들어선다.
앤더슨 감독은 토마스 핀천의 혼란스럽고 암호화된 언어를 영상으로 번역해냈다. 서사는 유기적이라기보다는 마치 연상작용처럼 이어지고,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모호함이야말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의 정서와 정확히 일치한다.
2. 줄거리와 세계관: 다큐처럼 흐릿하고, 환각처럼 선명한
사립 탐정 '닥 스포틀로'는 과거 연인 샤스타를 통해 부동산 재벌의 실종 사건에 말려든다. 그러나 그가 겪는 사건들은 단일한 스토리라인을 따르지 않고, 마치 꿈처럼 흩어진다.
영화는 닥이라는 인물을 통해 미국 사회의 정치적 혼란, 히피즘의 붕괴, 경제 권력과 정부의 결탁 등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골든 팽'이라는 이름의 수상한 조직은 권력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3. 닥과 샤스타의 관계: 히피의 사랑, 실종된 낭만
닥과 샤스타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다. 사랑은 회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기루처럼 그려진다. 둘의 대화는 명확한 감정보다는, 감정의 여운만을 남긴다.
결국 이 관계는 자유롭고 방탕했던 히피 세대의 마지막 잔재를 상징하며, 닥은 그 시대의 유일한 잔류자처럼 보인다.
4. 시각과 음향의 세계: 누아르와 몽환의 충돌
35mm 필름의 거칠고 흐릿한 질감,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닥의 혼란한 내면 세계를 그대로 시청각으로 구현한다.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이 한 편의 몽환적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각적인 감각이 뛰어나다.
롱테이크와 고정된 앵글, 의도적인 여백은 관객으로 하여금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감각'하게 만든다.
5. 결론: 혼돈의 시대에 남겨진 감정의 파편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감정의 풍경을 제시한다. 닥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모습은 포기와 희망 사이의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다.
혼돈과 모호함 속에서 삶의 단서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한 편의 시처럼, 또는 한 자락의 연기처럼 남는다.
오늘도 리뷰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고편 : https://youtu.be/wZfs22E7JmI?si=wSU7GKsX3MIXtt3v